당 깟 박사 -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신의’
당 깟(Dang Cat) 박사는 1936년 북부 어울락 남딘(Nam Dinh) 성의 하이하우(Hai Hau)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약을 잘 다루었다. 그는 군대에 들어간 후에 기본적인 의료 훈련을 받았고, 겨울에 무수히 많은 인명을 구했다. 1966년 그는 ‘육군의학원’에 파견되었고 이후 10년간 손라(Son La) 무장경찰부대 의료 팀 대장으로 복무한 후 국경육군학교 군의처의 처장이 되었다.
당 깟 박사는 1989년에 중령으로 제대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한가로운 퇴직 생활을 즐기는 대신 지난 19년간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성인의 사랑으로 충만해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의학 기술로 모두를 건강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남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면 나도 행복해지기 때문이지요.”
당 박사는 몇 년 동안 도로 사정과 날씨가 어떻든 낡은 자전거를 타고 하노이 시 구석구석을 누비며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의 소박한 작은 집은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 진료소’가 되었고 ‘신의(神醫)’라는 그의 명성은 전국 방방곡곡뿐 아니라 멀리 해외에까지 퍼져 나갔다.
당 깟 박사는 매일 평균 15명에서 20명의 환자들을 돌보지만 치료에 대한 비용은 전혀 받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자신의 연금으로 의약품과 과일, 설탕, 우유를 사서 헐벗은 사람들을 돕기까지 한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6, 7년간 이 일을 하느라 바빴을 때 어디선가로부터 마음을 평온히 가지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여러 번 들었습니다. 지상의 사람들이 보수를 주지 않아도 신이 보상하실 거라고 말입니다.”
이 예언은 황금시대 5년(2008년) 4월 8일 아침에 이루어졌다. 우리 협회 회원들이 수도 하노이에 있는 작고 아늑한 그의 집을 방문해 칭하이 무상사를 대신하여 ‘빛나는 세계 자비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스승님의 친필 서한과 미화 천 달러, 그리고 스승님의 출판물도 같이 전달되었다. 깊이 감동한 당 깟 박사는 존경을 담아 칭하이 무상사께서 건강을 유지하여 자선 활동을 통해 전세계에 선도적인 모범을 보여 주시길 기원했다. 그는 상을 받게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러워하면서 더욱더 헌신적으로 인류에게 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협회와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이 번창하여 보다 큰 결실을 맺길 기원해 주었다.
사랑과 자비심으로 인술을 베푸는 당 깟 박사의 모범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삶을 사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인류에게 더욱 봉사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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